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김창준] "한자 아는 첫 미국의원" 취재 기자들까지 환호

  ━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 6화〉 '한인 정치' 물꼬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12〉 두고두고 기억나는 중국 방문 '하나의 중국' 발언했다 대만계 유권자에 반감 병아리 수프 식사에 보좌관들 비명 지르는 소동 중국은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깝다. 지난 4000년간 한반도와 중국 관계는 늘 파란만장했다. 여러 차례 전쟁도 겪었다. 한때 우리 선조들이 중국 영토 일부를 점령한 적도 있다.     중국 문자인 한문은 오랜 문화교류로 적지 않게 한국어가 되다시피 했다. 중국은 지금도 한국의 가장 중요한 교역 상대다. 경제의 87%를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서 중국만한 교역 상대를 찾기 어렵다.     우선 위치가 가깝고 인구는 한국의 30배에 달한다. 중국 3% 부자 수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와 같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중국 사람들은 “중국보다 더 싸게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중국 짝퉁은 진짜보다 더 좋다”고 한다. 하원의원 시절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일이다. 베이징 천안문 광장 빌딩에서 중국의 입법기구인 전국인민대표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다.     건물은 바깥에서 볼 때 어마어마했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썰렁했다. 5분쯤 기다리니 10명 정도가 한꺼번에 들어오는데 위원장은 보이지 않았다. 키가 작아서 안 보였다.     그를 수행하는 젊은이 모두가 한결같이 키가 크고 체격이 당당한 데 비해 인민 위원장은 키가 작은 데다 초라한 촌사람같이 보였다. 오랫동안 중국 노동자와 농부를 대표해온 활동가여서 외모가 볼품이 없는 듯했다.   좌우를 정돈하고 앉았다. 수행원들과 기자들로 꽉 찬 회의실에 긴장감이 돌았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대만은 중국 영토인데 왜 미국은 대만을 두둔하며 군비를 지원하는가, 이는 내정간섭이 아니냐?”는 그쪽 질문이 나왔다. 이런 질문은 미국대사관으로부터 충분히 브리핑을 받았기에 나는 대답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 중국 방문 목적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한인 연방하원 의원의 친선방문이었다. 이런 민감한 질문은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은 이미 하나의 중국 정책을 채택했고 대만은 중국 영토라는 입장인데 뭐가 문제냐?” 고 반문했다. 얼른 대화를 돌렸다.   방안을 둘러보니 한문으로 쓴 족자가 걸려있었다. ‘天下太平(천하태평)’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도 한문을 읽을 줄 안다고 말하고 ‘천하태평’을 영어로 번역했다.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 심지어 기자들까지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중국 역사상 한문을 읽을 줄 아는 미국 연방하원 의원은 처음 만났다고 했다.       한문을 어디서 배웠냐는 질문에 어린 시절 한국에서 배웠다고 했다. 천자문은 이미 통독했다고 했더니 더 좋아했다.     삼국지 연속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웅 스토리라고 했다. 그 많은 영웅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기에 종이에 쓸 테니 먹과 붓을 가져오라고 했다. 준비된 듯 바로 먹과 붓을 가져왔다. 소매를 걷어 ‘조자룡’이라고 한문으로 적었다. 다들 일어나 손뼉 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좋은 게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중국 측은 나의 한문 실력을 과대평가했는지, 이튿날 아침 유명한 한자박물관 방문을 주선했다. 다른 흥미로운 관광을 취소하고 대신 박물관에 도착했다. 관장 안내를 받으며 관장실에 차려놓은 차와 과자를 몇 점 먹고 주위를 둘러보니 거의 병풍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관장이 이 병풍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데 듣기 괴로웠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그냥 참고 열심히 듣는 척했다. 관장이 중국말로 설명할 땐 그를 바라보고, 다음엔 통역관의 서툰 영어를 들어가며 설명을 듣자니 시간이 두 배로 들었다. 정치인인 게 괴로울 때가 바로 이런 때다.     박물관은 돌로 지은 5층의 아름다운 빌딩이었다. 이 5층이 모두 서예로 가득 차 있는 줄은 몰랐다. 2층을 거쳐 3층에 가니까 더는 지루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다지 서예에 대해 잘 아는 바도 없고 흥미도 없는데 ‘조자룡’ 석 자 때문에 마치 서예의 일가견이 있는 듯 잘못 알려져 다른 관광 일정까지 바꿔가며 이리 온 게 화가 났다.     결국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를 대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래도 여운이 남았다. 중국의 무궁무진한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중국인들의 환심을 샀고, 그들의 친구가 됐지만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내 지역구 내 대만계 미국인들에게는 공공의 적이 됐다. 당시 대만 독립 문제가 대만에서 이처럼 큰 이슈가 돼 있는지 몰랐다. 또 내 지역구의 중국인 대다수가 대만계란 걸 미처 몰랐다. 미국에 있는 중국 교포들은 크게 둘로 갈라져 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자리 잡은 중국인들은 대개 홍콩 출신이고, 남쪽 내 지역구 근처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주로 대만 출신이다. 이들은 만다린이라는 중국 말을 쓰기 때문에 홍콩 출신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 통역이 필요하다. 미국은 오직 영어, 한국도 오직 한국어다. 한 나라에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는 대만계 중국인 인심을 몽땅 잃었다. 첫 선거 당시 철저히 내 편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나의 낙선 운동에 가장 열심히 뛰었다. 충격이었다. 지금도 대만은 미국과 중국 관계에 있어 큰 이슈지만 내가 의원인 시절에는 첨예한 쟁점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 일로 대만계 한 명이 총에 맞아 죽은 사고도 있었다.   두 번째 중국 여행은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과 약 20명의 의회 보좌관과 함께였다. 장쩌민과 만남에서 받은 인상은 그가 카리스마가 넘치는 타고난 지도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만찬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수프를 먹기 시작하는데 별안간 옆에 앉아있던 백인 여자 보좌관들이 소리를 질렀다. 모두 놀라 바라보니 수프가 병아리 배 안에 양념을 넣고 끓인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구경하지 못한 요리였다. 젊은 미국 여자들이 포크로 집어보니 금방 나온듯한 어린 병아리가 눈을 감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통째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병아리를 젓가락으로 들고는 눈을 감고 통째로 입 안에 넣었다. 상상외로 맛이 기가 막혔다. 홍콩에서 희귀한 음식들을 먹어보았기 때문에 많이 놀라진 않았지만, 이들에겐 기절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주요리는 돼지고기 같은데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자세히 물어보는 게 실례란 말을 듣고 수행원들에게 묻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중국식당에서는 결코 부엌으로 지나가지 말라는 말도 있었다.     원용석 기자미국 한자 대만계 유권자 전국인민대표회의 상임위원장 역사상 한문

2021-11-17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